J.Brahms - 6 Klavierstücke op. 118 / 브람스 클라비어슈트케

2019. 5. 23. 18:55연주


 

 J.Brahms - 6 Klavierstücke op. 118

 

강주영 J.Brahms 6 Klavierstücke op. 118

intermezzos 1,2

브람스 클라비어슈트케 인터메조

 

 



Johannes Brahms (1833∼1897)

브람스는 자신의 스승인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사랑했다

브람스가 20세 청년시절 그들을 만나 슈만이 죽은 뒤에도 클라라와 아홉이나 되는 그들의 아이를 돌보며 자신은 독신으로 평생을 보냈다.
슈만클라라 결혼생활 16년.
브람스와클라라의 관계 40여년.
더가까워지지도 않고 더 멀어지지도 않고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서로를 지켜주면서 자유롭지만 아름답다.

어린아이들에게 '하지마' 하고 말하면 더 그러하듯이,
어른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금지 된 것에 더 중독이 되고 그것을 더 갈망한다.

슈만-클라라-브람스


글로표현하는 편지가 아닌 음정 하나하나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편지
진정으로 둘만아는 둘만의 이야기

그 모든것을 겪고 느낀 브람스가
60세에 작곡한 최말년작품


[영화 색계]
양조위와 탕웨이의 첫 밀회의 공간인 레스토랑에서

[드라마 밀회]
이루어질수 없는 몰래 사랑할수밖에 없는 유아인과 김희애의 둘만아는 비밀스러운 서로의 마음을 전달하는 연주..
"만약에 앵콜받으면 이거 칠께요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다 생각하고 그런줄 아세요!"
그때 흘러나오는 이 음악...
뭔가 애틋하고 짜릿하다...


6 Klavierstücke op.118
1. Intermezzo in A minor
2. Intermezzo in A
3. Ballade in G minor
4. Intermezzo in F minor
5. Romance in F
6. Intermezzo in E flat minor



브람스가 했던 이야기중..
자신이 다른사람들과의 교유에서 행복하듯 보여짐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결코 혼자서 웃을수 없었다

브람스를 알고난 후 이곡을 들으면
왠지모를 쓸쓸함과 씁슬함 내면의 그림자가 애처롭기까지하다



브람스


어릴때는 뭣모르고 참 좋아했었는데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더 어렵다

모든 것이 그렇듯,
뭣모를 때가 가장 용감하다
그때가 좋은걸지도 ㅎㅎ

  

그 깊고 두꺼운 텍스쳐
정열적인 매력
아름답고 논리적인
세상번뇌에서 멀어지는 한줄기 바램

매혹적이며 달콤하며 쓰디쓴...








+

브람스


[ Johannes Brahms ] 1833년 ~ 1897년 독일
브람스의 한 개의 음도 소홀하게 하지 않는 음악가이며 노력가로서, 하나의 악상을 정성껏 다듬어 그것을 조립하여 튼튼한 토대 위에서 많은 시간을 들여서 완성하는 음악가였다. 그의 작품은 구석 구석까지 면밀하게 추고(推敲)되었으며, 마음은 전편에 골고루 미치고 있다. 그는 베토벤처럼 과격한 성격도 아니고 모차르트처럼 뛰어난 천재도 아니었으나, 세상의 평론가들이 그의 작품을 문제로 삼아 그들의 논봉(論鋒)을 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독일의 ‘3대 B’(바흐 · 베토벤 · 브람스)의 한 사람이라고 칭송받는 그는, 1833년 5월 7일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타고난 음악가였다. 브람스 집안은 대대로 음악과 관계하여, 어떤 선조는 그 기능에 의해 생계를 해결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더블베이스 연주자였기 때문에 최초의 기초 교육은 아버지로부터 받았으며, 7세 때 음악 이론가인 마르크스젠에게 작곡법을, 코셀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3년이 지나 브람스의 천재성을 알게 된 마르크스젠은 자진해서 브람스를 더 가르쳤으며, 11세 때인 1844년에는 사적인 연주회에서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15세 무렵에는 바흐나 베토벤의 고전곡에 통달하여 이들 작품으로 연주회를 열 정도로까지 향상했다. 1853년 20세의 브람스는 당시의 유명한 바이올린 주자 레메니가 반주자를 구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지원해서 그 시험을 거쳐 당당히 합격하여 반주자가 될 수 있었다.

이 무렵에 다음과 같은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어떤 연주회에서 레메니와 브람스가 연주를 시작하려다가 무대에 놓인 피아노의 음이 실제보다 1음 내지 반음 틀리게 조율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깜짝 놀라며 당황한 두 사람은 무의식 중에 서로 얼굴만 마주 보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다시 조율할 여유도 없다. 그러자 브람스는 레메니에게 '자, 해볼까요’ 하면서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조옮김하면서 레메니와 함께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완벽하게 연주해 낸 것이다. 이 묘기는 레메니만을 놀라게 한 것이 아니라, 마침 연주회에 와 있었던 요아힘을 경탄케 하고 말았다.

요아힘은 그 무렵 유럽 제일의 바이올린 주자였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브람스의 실력을 충분히 알게 된 것이다. 요아힘은 곧 이것을 리스트에게 이야기하여 브람스를 소개했으며, 슈만에게도 전했다. 슈만은 흥미를 갖고 브람스와 만나 그 피아노 연주를 직접 들은 뒤, 그는 브람스의 천재성을 깊이 인식하고 그가 주재하는 『음악신보』에 ‘위대한 음악의 예언자 브람스 나타나다’라고 대단한 찬사로써 소개 하였다. 젊은 브람스는 리스트 · 슈만 · 베를리오즈 · 요아힘 등 그 무렵의 일류 음악가에게 소개되어 갑자기 환한 태양 아래 드러난 느낌이었는데, 요아힘을 알게 된 것은 장래에 바이올린 협주곡을 비롯한 많은 명곡을 완성하는 데 커다란 힘이 되었으며, 슈만에게 알려진 것은 젊은 브람스의 위대함을 일찍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브람스가 생애를 마친 빈에는 1862년 가을 9월에 처음으로 갔으며, 그리고 이듬해에 유명한 빈 성악학교의 지휘자로 초빙되었으나, 1년 정도 후에 그만두어 버렸다. 그러나 브람스는 빈이 마음에 들었음인지 그대로 빈에 머물게 되었다. 브람스가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여 썼다는 「독일 레퀴엠」은, 어머니가 타계한 그 이듬해인 1866년에 칼스루에에서 쓰기 시작하여 같은 해 8월 바덴바덴에서 완성하고, 1867년 12월 빈에서 그 일부가 초연되었다. 그 동안 브람스는 요아힘과 함께 각지에서 연주회를 열고, 귀로에 함부르크에 들러 아버지를 문병했다. 「제1교향곡」이 완성된 것은 43세 때인 1876년이었고, 브람스는 만하임과 뮌헨에서 스스로 지휘봉을 들고 초연했다. 이어 「제2교향곡」이 작곡되었고, 「바이올린 협주곡」이 요아힘의 조언으로 완성, 또한 요아힘에 의해 라이프찌히의 게반트하우스에서 초연되었다.

브람스의 빛나는 시대는 40이 지나 겨우 찾아왔다. 브람스의 창작 태도는 신중했다. 그는 실내악곡과 같은 비교적 소규모의 악곡에 자신을 얻은 다음 비로소 교향곡을 착수했다. 그것은 건축가가 작은 건물을 여러 개 만들어 충분한 경험과 자신감을 얻고 나서 큰 건축에 손을 대는 것과 같았다. 40세의 브람스는 모든 점에서 충분한 기반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 대곡은 어느 것이나 외관과 내용이 모두 다른 사람의 추종을 허용치 않는다. 브람스가 맨 처음 이탈리아를 여행한 것은 1878년이었는데, 남국의 따뜻한 태양과 풍족한 자연의 혜택은 브람스의 마음에 깊은 인상과 매력을 준 것으로 보여, 그 후에도 종종 이탈리아로 발길을 돌리고 있었다.

브람스가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 마침 차이콥스키도 이탈리아에 있었으므로 이들 두 사람은 처음으로 만날 수가 있었는데, 1888년의 일이었다. 이들 두 사람은 이탈리아를 제재로 해서 두 개의 명곡을 남겼는데, 차이콥스키는 「이탈리아 카프리치오」를, 브람스는 「피아노협주곡 제2번」을 쓴 것이 그것이다. 이탈리아는 1893년 봄에 마지막으로 방문했으며, 1895년에는 독일에서 스위스로 여행했다. 1896년 5월 20일에 브람스가 친밀히 사랑하는 클라라 슈만이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은 음악을 중개로 해서 시종 변함이 없는 깨끗한 사랑을 품어 왔으며, 이 클라라의 죽음은 브람스에게 큰 타격을 주었고, 브람스의 건강도 갑자기 나빠졌다.

그리고 우연히 여행 중에 걸린 감기 때문에 브람스의 몸은 눈에 띄게 쇠약해져 마침내 1897년 4월 3일 64세의 나이로 빈에서 그 생애를 마쳤는데, 병명은 간장암이었다. 브람스는 레메니의 반주자를 하던 무렵 헝가리 각지를 돌아다녔는데, 그 고장마다에서 레메니는 헝가리의 음악을 그에게 들려 주었다. 헝가리의 음악은 브람스에게 커다란 감명을 주어 브람스는 열심히 그것을 채보하여 연구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헝가리 무곡집」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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